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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10년 내포문화 돌아보기] 8. 만공스님이 사미계를 받은 서산 연암산 중턱 '천장사'

선(禪)의 향기 ③천장사-하늘을 감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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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0.01 18:52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연암산 천장사
▲ 연암산 천장사

[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어린 만공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스승 경허를 만났다. 큰 스님이 될 그릇임을 알아본 눈 밝은 스승은 만공을 천장사로 데리고 간다. 천장사에서 만공은 주지 태허를 은사로, 경허를 계사로 삼아 사미계를 받는다.

천장사는 서산 연암산 중턱에 있다. 아라메 솔바람길 2-1 구간인 길은 오르막 경사가 급하다. 천장사는 백제 무왕 33년(서기 633년) 담화 선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경허는 친구 자암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장사를 이렇게 썼다.

“천장사가 좋은 것은 한 쪽은 첩첩 산이요, 한쪽은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하나 너무 외져 경치를 구경하려는 사람도 없고 통인달사(通人達士)도 만날 수 없다. 통인달사만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처와 조사 또한 그러하다.”

관광객은커녕 세상 소식 전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곳, 부처와 스님들도 찾지 않는 외지고 궁벽진, 그래서 ‘하늘을 감춘 절’ 천장(天藏)인 모양이다.

‘연암’은 ‘제비바위’를 뜻한다. 제비바위 일대가 장관이다. 서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층을 이루며 위로 길게 이어져 있다. 벼랑 위는 반석으로 되어 있어 쉬기에 좋고 앞이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노송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 오른쪽은 경허, 왼쪽은 만공의 방이다.
▲ 오른쪽은 경허, 왼쪽은 만공의 방이다.

천장사는 경허와 그의 세 제자, 수월 혜월 만공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 대선사들의 이야기로 선(禪)의 향기가 피어난다.

청년 경허는 동학사 강원에서 이름난 강사였다. 환속한 옛 스승 계허를 만나러 서울로 가다가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선다. 삶과 죽음이 촌각으로 바뀌는 생생한 현장에서 그는 그가 자랑해온 불교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깨닫는다. 호랑이를 그린 그림은 그림일 뿐 호랑이가 아니다. 불경은 부처의 말을 적은 글일 뿐 부처가 아니었다.

동학사에 돌아온 그는 토굴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용맹정진을 시작했다. 당나라 영운 지근 선사의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는 화두를 들었다. 잠을 쫓기 위해 턱밑에 송곳을 받쳐 들었다던가. 목숨을 건 정진을 한 지 3개월. 어느 날 사미승이 문 밖에서 훅 물어왔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 순간 경허는 자신의 실상을 찰나에 꿰뚫어보았다. 생사의 경계는 어디던가. 들이쉰 숨을 내뱉지 못하거나 내 쉰 숨을 다시 들이쉬지 못한 순간 생사는 갈라지고 만다. 숨구멍에 생사의 갈림길이 있다. 그런데 ‘콧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사미승의 질문은 백척간두에 서 있던 경허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더 이상 갈래야 갈 곳 없는 곳에서 하늘은 열렸다. 숨구멍이 사라져 숨조차 쉴 수 없는 곳에서 그는 허방에 빠지듯이 한 생각을 여읜 순간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본 성품을 보았던 것이다.

경허의 법명은 성우(性牛). 드디어 애타게 소를 찾던 그가 원래부터 ‘본성품의 소’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1500년에 이르는 한국 불교는 단 한 번도 선의 심법이 끊이지 않고 불타오르고 이어져 왔다. 조선이 불법을 억압하고 도외시했을 때도 선기(禪氣)는 이어졌다. 그런데 서산에 이르러 그 맥이 끊겨 버렸다.

서산의 심법이 제자들에게 이어졌으나 외풍이 심하여 가물가물하던 선의 불씨가 사위어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경허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 200년 동안 꺼진 선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1879년 늦은 가을이었다.
경허는 동학사를 떠나 서산 연암산 천장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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