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남도청 10년 내포문화 돌아보기] 10. 경허 제자 수월 "도를 닦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선(禪)의 향기 ⑤천장사-물속을 걸어가는 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10.03 09:05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중국 옌지에 있는 수월정사에 모셔진 수월선사 진영.
▲ 중국 옌지에 있는 수월정사에 모셔진 수월선사 진영.

[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천장사 인법당 공양간 옆에 ‘원성문(圓成門)’이라는 편액이 걸린 방이 있다.(원구문(圓求門)으로 읽기도 한다) 경허가 1년 동안 보임을 했던 방이다. 그 옆방이 ‘월면당(月面堂)’이다.

월면은 만공의 법명이니 경허를 시봉하던 제자들이 머물렀던 방이다. 두 방 모두 한 사람 눕기에 벅찰 정도로 좁다. 이 작은 방에서 선기 하나만은 번뜩였을 터다.

경허의 법을 이은 수법제자는 흔히 ‘세 달(月)과 말없는 학(鶴)’으로 불린다. 세 달은 수월(水月) 혜월(慧月) 만공(滿空)이며, 이 세 제자는 모두 천장사에서 공부했다. ‘말없는 학’은 말년에 얻은 제자 한암(漢岩)이다.

▲ 수월스님이 일했던 부엌
▲ 수월스님이 일했던 부엌

 

▲ 수월스님이 일했던 부엌
▲ 수월스님이 일했던 부엌

수월은 자고 일어나면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틈이 생기면 스승에게 배운 짚신을 삼아 남의 발에 신겨 주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의 입에서는 천수경을 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천수경은 그에게 있어 공안이요 화두이었다.

그때가 1887년 겨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수경을 외며 삼매에 빠진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빛을 뿜어낸 그는 세 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는데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잊지 않는 불망염지(不忘念智)에 잠이 없어져 버렸으며 병을 고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천수경을 외움으로써 그는 천수관음으로부터 손 하나와 지혜의 눈 하나를 얻어 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 수월선사 기념비
▲ 수월선사 기념비

제자가 자나 깨나 큰 소리로 천수경을 외다가 마침내 깨우쳐 부처를 이루게 되자 경허는 기뻐하면서 천수경에 나오는 ‘수월관음’의 이름을 따 ‘수월’이란 법호를 내려주었다.

수월은 북으로 갔다. 두만강을 건너 걸어서 반나절이면 회막동이란 마을에 닿는다고 한다. 수월은 이곳에서 소먹이 일꾼 노릇을 했다. 받은 품삯으로 밤에는 짚신을 삼고 낮에는 소치는 짬짬이 큰 솥에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일제의 탐학을 피해 조국을 떠나 만주로 가는 사람들에게 수월은 주먹밥을 먹이고 새 짚신을 신겨 주었다.

베푼다고 생색내지도 않고, 받는다고 인사치레하는 이도 없었다. 수월은 길가 바위위에 주먹밥을 쌓아 두었고 짚신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을 뿐이었다. 누구에게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그런 마음도 없이 베풀고 그것을 받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받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경허의 맏제자이자 구한말 뛰어난 선승이었으면서도 수월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수월은 자신의 자취를 전혀 남기려 하지 않았다. 수월의 행장(行狀)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평생이 철저히 ‘나’를 버린 남에 대한 헌신이요 봉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글도 모르는 선지식, 볼품없이 생긴 선지식, 법문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선지식…. 수월은 그저 말없이 일만 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선지식임을 도무지 모르는 선지식 같았다. 수월의 삶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아니, 어느 때는 그림자만 있었고, 또 어느 때는 그 그림자마저 거두어버렸다.”(김진태가 쓴 ‘물속을 걸어가는 달’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수월의 법문은 딱 하나다. 부상을 당한 독립군 연설단원이 수월의 초막에 머물 때 수월이 들려준 법담이다.

“도를 닦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