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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10년 내포문화 돌아보기] 24. 내포교회를 세우고 이끈 사람들은 풀뿌리 민초

천주교 못자리 ④내포교회는 민초들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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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1.01 09:02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내포교회는 풀뿌리 교회였다. 합덕 본당은 내포에 복음을 밝힌 지 120년이 넘어 한국 교회의 산 증인이 된 유서깊은 본당이다.

[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정민 한양대 교수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 쓴 책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에는 내포교회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내포교회를 세우고 이끈 사람들이 양반이 아니라 풀뿌리 민초라는 것이다.‘서학’은 천주교를 말한다.

“초기 교회의 양상에서 지역별로 성격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여주나 양평, 충주 및 청주 교회는 양반 계층이 전면에 섰고, 충청도 내포 일대만은 유난히 신분 낮은 일반 백성과 노비 계층이 신자의 주축을 이루었다.

내포 지역의 지도자는 이존창이었다. ‘송담유록’에 따르면 그는 홍낙민 집안의 속량 노비의 아들이었다.

같은 책에서 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존창이 상민이었기 때문에 비록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에게 가르침을 행하였지만, 충청도의 사족(士族) 중에는 한 사람도 물든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라고 적고 있을 정도다.

내포 지역 교회의 특성은 상한(常漢), 즉 상놈들이라 불리는 신분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신도층이 형성되었다는 데 있었다.”

당시 충청도 관찰사는 박종악(朴宗岳)이었다. 그는 내포교회와 관련한 사건들을 수시로 정조에게 보고했다.

“종으로 사학을 본받아 배우는 자는 그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대가 없이 양민으로 놓아주었고 이웃으로 사학을 따르는 자는 그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옷과 양식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까지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문득 기뻐하였습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고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던 공동체에 대한 소문은 금세 원근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믿기만 하면 노비 문서도 불태운다더라, 가난한 이에게는 옷과 양식도 아낌없이 나눠준다고 하더라고 소곤거렸을 것이다. 그러니 온 마을이 한꺼번에 신자촌으로 변하는 등 확산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황일광은 홍주 사람으로 백정 출신이었다. 이존창으로부터 천주교를 배우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손가락질당하고 멸시받던 삶, 쓰레기 취급의 응어리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게는 천국이 두 개 있습니다. 저같이 천한 백정을 이처럼 점잖게 대해 주시니, 이 세상의 삶이 제게는 천국이요, 죽은 뒤에 가게 될 하늘나라가 또 하나의 천국입니다.”

황일광과 황차돌 형제는 정약종 이존창 황사영 등 사학 3적의 심복으로 지목돼 체포돼 홍주로 보내져 참수됐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조정은 내포교회의 뿌리를 뽑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기도 했다. 명목은 주문모 신부를 붙잡기 위한 것이었지만 스파이가 한 짓은 마을별 교회의 동태와 지역별 지도자 조직, 집회는 언제 어느 집에서 열리고, 모이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등 염탐이었다.

스파이는 붓을 매주는 필공이나 각종 행상노릇을 했다. 내포교회 교인들이 민초였으니 민초 행세를 했던 것이다. 스파이가 다닌 곳마다 교회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교회도 자신들을 사지로 밀어 넣은 스파이가 조화진임을 알게 된다. 붙들려간 교인들은 자신을 천주교로 이끈 사람이 조화진이라고 입을 모아 지목했고 관청에 끌려간 조화진은 여러 달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스파이로 보낸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그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비선에 속해 있어서 조정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조화진은 감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벽위신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내포교회는 풀뿌리들이 모여 만든 교회였기에 바람이 불면 잠시 누울 뿐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 홍주순교성지의 순례길에 놓인 조각작품. 조각가 고영환 형제가 순교자의 손을 주제로 조각한 작품이다.
▲ 홍주순교성지의 순례길에 놓인 조각작품. 조각가 고영환 형제가 순교자의 손을 주제로 조각한 작품이다.
▲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 홍주순교성지 순례길 조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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