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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10년 내포문화 돌아보기] 18.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 서천 마량포구

바다의 꿈 ⑥서천-성경 서천으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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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0.13 10:47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한국최초성경전래지 기념비
▲ 한국최초성경전래지 기념비

[충청신문=대전] 안숙택 기자 = 내포의 북쪽 관문이 당진이라면 남쪽 관문은 서천이다, 서천의 마량포구에는 ‘한국최초성경전래지’라고 큼지막한 돌에 새긴 기념비가 서있다.

그 옆에는 조선의 판옥선과 영국함선이 나란히 서있다. 아마 200년 전 마량진 앞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재현해 놓은 것일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날은 1816년 9월 5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16년 7월 19일 자, 충청수사 이재홍이 올린 장계를 보자.

▲ 재현된 조선 판옥선과 영국함선
▲ 재현된 조선 판옥선과 영국함선

“마량진 갈곶(葛串)에 이양선(異樣船) 두 척이 표류해 이르렀습니다. 진의 첨사 조대복과 비인 현감 이승렬이 보고하기를, 이양선을 인력과 선박을 동원하였음에도 끌어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첨사와 현감이 작은 배로 같이 가서….”

서양의 배를 뜻하는 이양선, 그 배 두 척은 영국함선 알세스트(Alcest)호와 라이라(Lyra)호이었다. 두 함선의 함장은 맥스웰(Maxwell)과 바실 홀(Bassil Hall) 대령이었다. 바실 홀의 항해기 이날 기록.

“오늘 임무는 배를 정박할 장소를 찾는 것. 오후 3시께 훌륭한 휴식처로 보이는 만(灣)을 발견했으나 배가 들어가기엔 수심이 얕았다. 맥스웰 함장과 나는 보트로 옮겨 타고 뭍을 향했다. 포구가 소란스럽더니 깃발을 단 일단의 배들이 몰려 왔다. 트럼펫(태평소?)을 불고 푸른 양산을 씌운 배가 특별해 보였고 그 배에 관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배에 오르니 양산 아래에 흰 수염을 허리 아래까지 드리운 점잖은 원로가 앉아 있었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우리를 맞아주었지만 우리가 배에 오른 게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를 우리 배로 초청해 회담을 계속했다.”

조대복 첨사는 권하는 의자를 거절하고 하인이 들고 간 방석에 앉았다. 첨사는 첨절제사를 줄여 부르는 것으로 진을 맡고 있었다면 전문 무관이었을 것이다. 첨사와 함장. 영국은 왕실의 허락이 있고 조선은 비공식적이었지만 마량진에서 조선의 무관과 영국의 무관이 두 나라 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던 것이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첨사와 함장은 서로 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홀은 첨사의 문화적이고 당당한 태도에 감탄했다.

“다른 나라의 습관을 이해하는 우아하고 자연스런 태도는 정말 놀랄 만했다.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이라고는 하나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 정도가 무시 못 할 만큼 높다는 걸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 첨사는 대포를 쏘는 걸 참관했고 서양문물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보인 것은 선실을 가득 메운 책이었던 모양이다. 그 중 크고 화려한 장정의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맥스웰 함장이 그 책을 선물하려 하자 그는 주저하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가 배를 떠나려 할 때 다시 건네주자 이제는 아주 감사한 표정을 지었으며 책을 받고 상당히 기분 좋은 모습으로 돌아갔다”(홀)
이 대목의 조선 기록은 다르다.

“첨사와 현감이 배에서 내릴 때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굳이 주었는데(받지 않겠다고 하자 배에 던졌는데) 작은 배에서 받은 두 권과 합하면 세 권입니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책이 건네졌다는 사실이다. 홀 함장의 기록에 따르면 첨사에게 준 크고 화려한 정장의 책이 바로 성경이라는 것이다.

첨사가 받은 성경은 규장각으로 보내졌으며 그 후 어찌됐는지 알려진 게 없다. 크고 장정이 화려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1611년 초판을 찍은 ‘킹 제임스(King James)’성경일 것으로 종교학계는 추정하고 있다(김양선 목사).

200여 년 전 가을이 오는 즈음, 마량 앞 바다에서 성경이 전해졌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창세기의 구절을 인용한다면, 처음에 말씀이 마량으로 왔다. 한국기독교사에 이만한 대 사건이 또 있을까.

성경이 서양문화의 모태라는 점에서 본다면 문화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마량포구
▲ 마량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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