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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나무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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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0.15 14: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산에는 나무들이 살고 있고 나무들은 숲을 만든다. 숲에는 각양각색의 생물들이 숨을 쉬고 숲으로부터 영양분과 보호를 받는다. 나 역시 나의 나무가 있었다. 하염없이 따뜻한 아랫목이 되어주고 내 삶의 시원한 지붕과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준 나의 큰 나무는 나의 부모님이셨다.

나무는 뿌리를 통해 다른 나무의 뿌리를 만나 숲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산토끼들과 다람쥐, 노루 등 숲속 여러 생명체와 깊은 인연을 만들어 간다.

우리 모두도 각자의 특별한 인연으로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와 동료를 만나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고 이 세상은 특별한 장소이고 서로에게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행운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무는 수많은 이야기가 꿈틀대는 숲속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신만의 키 큰 나무로 성장하고 울창한 숲의 나라를 창조해낸다. 나 역시 내 안에서 나만의 마음들과 세상에서 경험한 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었고 나를 도와주고 아낌없이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는 내 삶의 나무들이었고 모든 걸 품어주는 나의 숲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웠던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에 나오는 대목인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과 같다. 나무가 한평생을 잘 살아내기 위하여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듯 사람도 자기 삶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삶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수많은 자극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지키려면 숲 전체가 건강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가정의 건강은 내 자신부터이다. 내가 건강함으로써 가족 구성원 모두가 건강해지고 안전해지는 건강한 가정의 숲이 존재하는 것이다.

숲속에서 우듬지는 꼭 필요하다. 그 이유는 숲속의 나무가 하늘을 향해 제멋대로 자라고 질서 없이 태양만 따라간다면 나무의 수형은 통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숲속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숲의 중추적인 역할의 우듬지가 필요하다. 우듬지는 내 삶의 의미이다.

가을 단풍나무는 1년에 한 번쯤 우리네 삶을 벅차게 해준다. 하나하나의 잎은 빨강이나 노랑, 초록, 갈색, 오렌지 등 다른 색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전체를 보면 선명하고 따뜻하기도 해서 감싸주는 기분이 묘하다. 사실 잎 색깔이 변화하는 데는 많은 힘들고 바쁜 과정이 있는 것 같고 나무들에는 또한 제일 바쁜 시기일 것 같다. 겨울나무는 나무와 가지만 있어 더욱 제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너무 편안한 나무,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아닐까? 살아 계셨을 때는 그 그늘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미처 몰랐다. 작은 새들이 색깔이 있으니까 나무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나무가 기분 좋아서 날갯짓 멈추고 몇 번씩 그 나무로 날아오려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큰 나무처럼 듬직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작은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은 나의 큰 나무이었고 나는 그저 작은 새였다. 그저 끊임없이 대지에서 영양을 흡수하고 하늘을 오르내리면서 폭풍과 폭우에 지지 않는 큰 나무이셨다. 사시사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 그래서 작은 새는 날아서 큰 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가지 끝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나의 나무는 여름의 초록빛 가득한 잎사귀처럼 상쾌함이 있었고 바람이 불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편안함을 주었다. 내 인생에 찬란한 색을 입힐 수 있는 큰 나무의 존재는 나의 부모님이셨다. 그리고 원래는 작았던 나무가 꿈을 가지고 하늘을 차고 올라가는 큰 나무로 자라 마침내 또 다른 작은 새들을 안아주면서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또 다른 숲을 만들어 가도록 나 역시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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