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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생 종점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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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2.10 14: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어떤 것의 마지막 점, 또는 어떤 시기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종점, 그리고 기차나 버스, 지하철을 운행하는 일정한 구간의 맨 끝이 되는 지점을 흔히들 종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에 있어서 우리들의 종점은 어디일까,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른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가 된다’ 노인 복지관에서 의료 봉사활동 중 백발의 어르신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이 드니 자식도 남이란걸 알게 되고 그저 아는 이웃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아야 상처를 덜 받는다고 부모님 생전에 나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가까운 친구가 차려온 술상에 막걸리 몇 모금으로 지친 설움을 적셨다는 내 아버지께서는 나를 참으로 자랑스러워하셨다. 하지만 어리석은 나의 마음은 늘 차가운 대응으로 내 아버지의 심장을 후려치곤 하였다. 자식 일이라면 빗장 열어 부는 바람이 되어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부모님 생전에 미처 깨닫지 못함이 후회스럽다.

정년이 코앞이고 한해의 끝자락에 우뚝 선 내 자신을 되짚어 본다.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다들 잊힘보다 더 가슴 아픈 게 버려짐이라고 하였는데, 자식 한번 앉은 자리엔 백 년 동안 풀도 안 자란다고, 나의 제자들도 그리하겠지, 종점에 와 봐야 알게 되는 게 인생이라고 하였던가, 참으로 부질없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의 인생 종점을 경험하게 된다. 종점의 이야기가 내 아버지의 삶처럼 내 삶에 큰 힘과 가치를 줄 때도 있었고 내 어머니 삶처럼 편안함과 위로를 줄 때도 있었다. 또한 종점에는 지옥과 천국이 함께 있었고 절망과 희망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더러는 가슴 두근거리는 종점이 있거나 가슴이 아픈 종점의 이야기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누구의 인생이든 늘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고통의 무게에 눌려 벼랑 끝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목이 터져라. 울다가 악몽에서 깨어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 종점은 끝이 아니라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삶의 투영이기도 하다. 사람의 삶에는 아쉬움과 부족함이 만족감과 풍요로움보다 늘 많았다. 이 나이가 되어 되돌아보면 아름답고 값진 인생은 고통과 고뇌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할 때 훨씬 값지고 고귀하였었다.

아침이면 늘 만나게 되는 태양에는 종점이 없다. 오늘 내 눈앞에 존재하는 태양은 내일이 되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뿐이다. 그 이유는 사라진 태양은 다른 태양이 아니라 같은 태양이기 때문이니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모든 것은 그만큼 새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 종점은 종착지가 되면 안 된다. 종착지는 시작의 의미가 없으므로 종점이 되어야 한다. 종점은 시작점이며 새로운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숨겨진 용기라는 무기가 있으므로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겨진 용기를 찾아서 극복해 낸다. 종점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 종점에 먼저 갈려고 발버둥도 애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종점에 도착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가야 할 종점을 아는 사람은 편안히 앉아 차창 바깥으로 스쳐 가는 경치를 구경하며 여행을 즐길 것이다. 하지만 종점을 모르는 사람은 운전기사에게 반복되는 질문을 할 것이다. ‘기사님, 다음 정거장이 어디예요’ 기사분의 기분은 어떠하였을까.

부지런한 농부는 가을에 걱정할 일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정신없이 살다가 죽게 되었고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받게 되었는데 허둥대고 바쁘게 살다가 좋은 일 한번 못하고 죽게 되었으니 억울하다면서 미리 진작 소식을 주든지 기별하지 않고 이렇게 죽게 했느냐고 하자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소식도 했고 기별도 주었노라고 했다. 밤낮이 바뀌고 겨울이 가고 여름 가는 것이 소식이고 기별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인생 종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회 없고 행복해지는 인생 종점에 도착하는 방법은 목적이 있는 여행자와 방랑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선택받는 삶이 아니라 선택하는 삶이 되어야 아름다운 나의 인생 종점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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