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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 복합예술공간 '헤레디움'을 가다] 아픔의 역사로 향하다

‘인동 100년: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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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4.06 18:11
  • 기자명 By. 고지은 기자
▲ 대전 동구 인동 헤레디움 전경. (사진=고지은 기자)

[충청신문=대전] 고지은 기자 = “이번 역은 헤레디움입니다.”

1922년. 일제는 지금의 대전 동구 인동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를 지었다. 선진 농법을 전해주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해 잘 살게 해주겠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설립됐으나, 사실은 조선의 토지를 비롯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함이었다. 일제의 조선 침략 야욕이 드러난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헤레디움의 전신 동척이다.

민족의 아픔이 서린 동척은 2023년 3월 16일, '헤레디움'이라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라틴어로 '물려받은 토지'를 뜻하는 헤레디움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아픔의 역사를 마주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새로이 기록하고자 한다.

기차역사를 모티브로 꾸며진 전시관은 본지 기자를 1900년대 인동으로 안내했다.

▲ 헤레디움을 찾은 관람객들이 1920년대 인동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고지은 기자)
▲ 헤레디움을 찾은 관람객들이 1920년대 인동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고지은 기자)

# 첫 번째 종착역. '만세운동'
1919년 3월 16일 인동 가마니장터.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던 날 난데없는 큰 소리가 들렸다. 달려간 곳에는 누군가 산더미처럼 쌓인 가마니 더미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장꾼들은 하나둘 동참했고, 쌀 가마니 위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대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일본 헌병대의 탄압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우리 민족의 기개를 꺾을 수는 없었다.

# 두 번째 종착역. '동척의 역사'
동척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만주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설립한 수탈기관이다. 9개 지점의 소재지는 주로 곡창지대와 주요 항구도시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 국토의 40%에 달하는 논과 밭, 임야를 소유했다. 대부분 해방 이후 6.25전쟁과 도시 개발로 인해 훼손·소멸됐으며, 현재 대전·부산·목포의 세 지점만 남아있다.

# 세 번째 종착역. '인동의 근대와 현재'
인동 일대는 지역 초기 도시형성기부터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천 서쪽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전 중심 지역이었다. 본 건물은 대전시장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과 이주한 일본인 보호를 위한 공공기관이 설치된 지역의 경계선상에 설치됐다. 인동은 해방·한국전쟁 이후에도 경제와 문화, 주거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주상복합 시설 등이 들어서며 그 흔적이 일부만 남아있다.

# 네 번째 종착역. '동척 대전 지점의 변천사'
동척 대전점은 충남도청 본관 건물과 함께 일제 강점기 지역의 대표적 신식 건물이다. 광복 이후 체신청과 대전 전신전화국을 거쳐 민간인 소유가 된 건물은 상업시설로 활용되며 건립 당시 외양을 잃었다. 그러나 일제 권위를 상징하던 건물 상층부 태양 문양의 동척 마크는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가혹했던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 마지막 종착역. '복원과 헤레디움'
동척 대전점은 2004년 9월 근대 건축물로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됐다.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갖가지 이해타산이 얽히며 방치돼있던 중 지난 2019년 씨앤씨티가 매입, 올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헤레디움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건물 외벽의 색깔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기존 벽돌과 새로운 벽돌을 조합해 복각했다고 한다. 창문도 100년 전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다만 파손이 심한 부분은 당시 근대 건축양식을 살려 재구성했다. 구조물이 훤히 보이는 천정 몰딩도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 헤레디움 1층 전시공간. (사진=고지은 기자)
▲ 헤레디움 1층 전시공간. (사진=고지은 기자)

또한 복원·보수 작업 전 모습을 기록한 200여점의 사진자료와 옛 동척 대전·목포 지점 모형도 전시돼 있다. 비록 축소 모형이지만, 당시 우리 민족에게 이 건물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느껴졌을지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누군가는 일제 치하 비극을 담은 건물의 복원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 역사의 일부이기에 기억해야만 한다. 한세기 동안 지역민의 애환을 함께한 공간이 100년 후엔 어떤 기억을 담은 건물로 남아있을지… 민족적 아픔까지 '물려받은' 이곳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한편 전시는 오는 6월30일까지 이어지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 운영된다. 휴무일은 월요일과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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