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문어 같기도 하고, 낙지 같기도 하고. 생김새도 그렇지만 주꾸미는 이름도 재미있다.
조선시대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한자어로 ‘준어’ 우리말로 ‘죽금어’라 한다 했다. 한자어 ‘준’자가 ‘쭈그릴 준’인데 바위틈에 쭈그리고 있는 모양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어부들은 ‘쭈그리고 미끌거려’ 주꾸미라는데. 서유구의 ‘전어지’의 소개는 상세하다. “…초봄에 잡아 삶으면 머릿속에 흰 알이 가득 차 있는데 마치 찐 밥 같아 일본사람들이 반초라고 한다” 했다.
내포 앞바다는 낚시 천국이다. 배를 타고 나가는 선상낚시가 성행인데 요즘에는 방파제나 갯바위를 따라 걸으며 낚시를 던지는 워킹낚시가 인기다.
낚시 어종은 다양한데 최근 인기어종으로 떠오른 게 주꾸미다. 주꾸미는 낚시나 그물로 잡기도 하지만 소라나 고둥의 껍데기를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으로도 잡는다. 빈껍데기를 줄줄이 묶어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는다. 거기에 주꾸미가 제집인 줄 알고 들어가는 것이다.
2007년엔 큰일을 내기도 했다.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가 고려청자 접시를 움켜쥐고 올라왔던 것이다.
2007년 5월 4일 어민 김용철 씨(당시 58세)는 바닷가에서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어민들은 ‘물꿈’을 길몽으로 친다.
대섬 앞바다로 조업을 나간 김씨는 주꾸미 800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한 마리가 희한했다. 푸른 빛깔의 접시를 발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소라껍데기를 가라앉혀 놓으면 주꾸미가 그 안에 들어가 알을 낳은 다음 입구를 다른 조개껍데기나 자갈로 막아놓는다.
그런데 이 주꾸미는 청자접시로 입구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꾸미 덕분에 청자 2만5000여점을 담고 있던 청자운반선이 발견됐다.
헛말이 되었지만 ‘주꾸미 공덕비’를 세우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이 배는 ‘태안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07년 7월 20일과 27일 어부 심선택 씨가 청자 26점을 인양했다는 신고를 해왔다. 이곳은 ‘태안선’ 발견지점에서 약 2㎞ 떨어진 섬 마도 앞바다였다.
이번에는 주꾸미가 아닌 청자가 그물에 걸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본격 발굴이 이어졌고, 2009년부터 고려시대 침몰선 3척(마도 1·2·3호)이 잇달아 인양됐다.
태안선은 청자운반선, 마도 1·2·3호선은 곡물운반선으로 밝혀졌다. 마도 1·2·3호선 화물 대부분은 벼와 쌀·콩·메밀·조·피·기장 등 곡물과 건어물 및 메주, 젓갈류 등이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배에서 발견된 목간(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 죽간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 배들의 침몰시기도 밝혀냈다.
태안선은 1131년, 마도 1호선은 1208년, 마도 2호선은 1200년 무렵, 마도 3호선은 1264~1268년이라고 밝혔다, 이 배들은 다양한 유물과 목간, 죽철 등을 통해 당시 생활상과 문화상을 복원할 수 있는 고려시대 타임캡슐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4월엔 마도 4호선이 발굴됐다. 4호선에는 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배에서 발굴된 목간에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란 한자가 적혀 있었다.
배의 출발지가 전남 나주, 도착지는 광흥창이란 뜻이다. 전남 나주 조창에서 출발해 조선 시대 녹봉을 관장하든 기관인 광흥창(현재 서울 마포구)으로 가던 배였다. 1410~20년(조선 태종~세종) 무렵의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을 운송하는 조운선으로 밝혀졌다.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선 2015년 기준으로 고대 선박 14척, 유물 3만여 점이 발견되어 ‘바다 속 천년수도’라 불린다. 최소 수백여 년 전 유물들이 지금껏 수만 점 이상 발견되었고 앞으로도 수십만 점이 더 있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