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윤지현 기자 = "세월 탓이오… 세월 탓이지…."
선풍기 소리만 들려오는 휑한 거리. 하염없이 TV만 바라보는 상인들.
인기척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뭐 찾어?" "찾는거 있어요?"라는 친절한 목소리만 들려온다.
한산한 인도 위 허수아비가 된 폐백 포토존, 한적한 차도 위 무용해진 한복거리 조형물은 빛을 잃은지 오래다.
'대전 동구 원동 한복거리' 모습이다.
한복거리는 중앙메가프라자부터 신중앙시장, 중앙도매시장, 중앙종합시장 총 4개의 구역으로 이뤄져있다.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추억 속에 사라진 단어들 '전당포' '헌책방' '철문점' 'LP 판매점' 등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은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에게 한복을 판매하며 포목으로 시작됐다.
이후 한복 점이 하나 둘 생겨나 약 300m 거리에 160여개의 한복 도·소매 판매점과 120여개의 한복 제조 및 수선 업소로 가득 채워졌다.
1980년대 업체마다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선보인 덕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대전 특화 산업으로 명성을 떨치며 거리는 전성기를 누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동구청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이곳을 특화거리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복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고, 코로나마저 겹쳐 거리는 직격타를 맞았다.
결혼식이 취소·축소되고, 명절에 친척간의 왕래가 줄어들며 한복 수요가 급감 한 것.
한복판매점에 진열된 한복은 봐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형형색색 고운 태를 뽐냈다.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도 징검다리 식으로 보였다.
20년간 한복점을 운영한 송모(63)씨는 "폐백도 없어지고 결혼식도 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전통적인 것들을 왜 소멸시키려고 하는지 안타깝다"고 푸념했다.
이어 "한복 고유의 멋이 있다"며 "옛 것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일침했다.
상인 최모(59)씨도 "요즘은 구매보다는 대여를 많이 한다"며 "이마저도 예식장에서 모든 걸 진행하는 탓에 설 자리를 잃었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오모(61)씨도 "하루에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코로나 이후 발길이 뚝 끊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에 한복을 입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며 "세월 탓이지… 세월 탓이오"라고 한탄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코로나 여파와 간소화된 명절과 혼례 등의 절차들이 거리의 명맥을 지켜내지 못했다.
박황순 중앙시장활성화 구역 회장은 "현재 한복거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업을 구상중이다"며 "내년부터 구역 별로 특성화 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