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윤지현 기자 = '띵동댕동' 어린 시절 하교 종소리가 들리면, 신발주머니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문구점으로 뛰어가곤 했다.
문구점 앞 뽑기 기계에 앉아 조잘거리며 불량식품을 먹었는데 이곳이 우리들의 사랑방이었다.
시간이 지나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익숙한 시대가 됐다.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역행하듯 동네 친구들과 편안하게 놀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책방이 있다.
책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를 내어주며 '동네 사랑방'을 자처하는 곳.
대전 대덕구 용전 초등학교 한 골목에 위치한 '책방 정류장'이다.
◇ "책을 오래 읽고 싶었다"
'책방 정류장' 오민지 대표는 "오래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었다"며 이 곳의 시발점을 떠올렸다.
책방지기 이전 오 대표는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퇴사 이후,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 여러 곳을 배회했는데 그 가운데 서점에서 가장 독서에 오랜 시간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그녀의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에서 '책방 정류장'이 시작됐다.
◇ "잠깐의 순간이라도 치유할 수 있는 곳"
오 대표는 "칼퇴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걸 좋아했다"며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꽉 찬 퇴근길 버스를 타기 전, 그 잠깐의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힐링 공간 '버스정류장'에서 '책방 정류장'이라는 이름을 발상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라도, 이 책방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주인장의 소망처럼 동네 주민들의 행복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다.
낮에는 주로 초등학생들이 찾아와 최신 노래를 신청하고 보드게임을 즐기고 간다.
또 저녁에는 2030부터 40대가 찾아와 북클럽, 글짓기 모임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 "200명의 책방지기"
이곳은 지난 2년 동안 200명의 새로운 책방 주인이 찾아왔다.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혼자 서점을 운영해 보는 '일일 책방지기'라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목, 금, 토, 일 책방을 운영할 '일일 사장님'을 찾고 있다.
체험비 2만 원을 내면 문을 여는 것부터 닫는 것까지 책방지기의 하루를 경험해 볼 수 있다.
할 일은 ▲서점 새로 입고된 도서를 정리한다 ▲마음에 드는 책 소개 글을 적는다 ▲공간을 채울 노래를 틀어둔다 ▲일일 책방지기 일지를 쓴다 ▲손님을 맞이한다 등이다.
하루의 영업을 마감할 땐 체험비는 고스란히 책으로 돌아온다.
구매하고 싶은 책 혹은 오 대표가 추천한 책 중 하나를 택해 선물로 가져갈 수 있다.
오 대표는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홀로 운영하다 보니 서점 지원 사업 관련 외부 교육을 받기 위해 서점 문을 닫아야 했다"며 "아쉬운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2주에 한 번 진행한 프로그램이 수요가 생기자,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어났고, 일주일에 두 번…네 번이 됐다"고 했다.
'일일 책방지기'는 책방정류장의 비장의 프로그램이 됐다.
체험을 위해 타지에서 휴가를 내고 오는 이들도 있다.
◇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2019년 10월 문을 연 이곳은 '다양성'을 주제로 책을 큐레이팅한다.
인권과 차별, 고양이, 인생, 식물, 비건 등 10가지의 카테고리로 200권의 헌 책을 합해 총 500권 이상의 도서가 구비돼 있다.
오 대표는 책의 힘을 명쾌히 알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 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한계가 있으며, 그렇기에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
그녀는 경험한 세계가 넓다면 삶을 살아가며 더욱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책방 정류장이 '다양성'을 요지로 도서를 선별해 오는 이유다.
오 대표는 "한 사람이 모르고 있던 세계를 책을 통해 전하는 것이 책방지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네 친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책방, 책방 정류장에 내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