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한 한문식 대령은 1945년 해방병단(해군의 전신)에 입대해 임관 후 인천기지 갑판사관, 진해기지 인사관을 거친 후 1948년 김해정장으로 복무 중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 대령은 1950년 8월 6~7일 서해안 봉쇄작전에서 적 발동선 2척, 화물선 2척, 다수의 범선을 격침해 서해를 통한 적의 병력 이동과 군수물자 수송을 차단하였고, 이후 금강산함장으로 해상 최전선에서 임무를 이어나갔다.
1952년 7월 15일, 적군 300여 명의 기습공격으로 창린도를 점령당하자, 금강산함·영국 순양함·호위함과 아군 부대는 미 해군 전투기의 지원을 받아 창린도를 재탈환 하기로 한다.
다음날 새벽, 한 대령은 범선과 발동선을 이용해 유격군 140여 명을 창린도에 상륙시켰으며 포격 및 폭격을 전개해 창린도 84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고, 적군 70명 사살·27명 생포·무기 다수 노획의 전과를 달성했다.
이후 한문식 대령은 휴전회담을 이용해 서해안 일대에 포대를 구축하고 경비 병력을 증강시켜 적의 해안 진출 시도를 막았다.
정부에서는 한문식 대령의 공적을 기려 1951년과 1953년에 충무무공훈장, 1952년에 을지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9월 이달의 영웅 스토리’는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