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주 단장은 독일 트로씽엔 국립음대에서 수학한 성악가이자 문화예술 경영 전문가다. 오랫동안 무대 뒤에서 후원자로 활동하다가 대전오페라단 단장을 맡아 37년 전통을 잇고 있다. 그는 지역 예술인 발굴과 청소년 음악교육, 소외계층 공연 지원에 힘쓰며 대전 오페라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편집자주>
오페라를 놓지 못하는 ‘애정과 진심’
대전 오페라단 지은주 단장은 “공연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매년 턱없이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무대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오페라에 대한 애정과, 관객과 나누고 싶은 진심 때문이다. 그는 “예술은 경제적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사비를 보태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무대 위에서 피어나는 감동은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라고 했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오페라 <나비부인>은 그런 그의 진심을 보여준 무대였다. 약 3천 명의 관객이 객석을 채우며 대전에서 오페라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지 단장은 “대전에서 3천 명이 오페라를 보러 왔다는 건 엄청난 비중”이라며 “특히 다문화가정, 장애인,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무료 티켓을 제공해 더 많은 이들이 무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회상했다.
<나비부인> 공연은 배우들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세밀한 감정 표현이 객석을 압도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이 숨죽이며 이야기에 몰입하는 모습은, 대전 시민들이 얼마나 오페라를 사랑하고 기다려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심어주는 교육적 가치
지 단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교육적 역할이다. 그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 음악을 접하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지 우리는 간과하면 안 된다”며 “어릴 때 공연을 본 기억이 삶의 자양분이 되고, 감정을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오페라를 설명하고, 줄거리와 인물을 소개한 뒤 직접 무대에 초대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가족센터에서 단체로 공연장을 찾았는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인물과 줄거리를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낯선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했다. 지 단장은 “2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긴 시간인데, 중간 휴식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을 지켜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해하며 몰입하면 이탈리아어도 마치 한국어처럼 들릴 수 있다”고 했다.

다문화·장애 아동 등 소외계층에 전하는 선한 영향력
대전 오페라단은 다문화가정, 장애 아동 등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지 단장은 “평생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친구들에게는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무대 가까이에서 성악가의 숨결을 느끼고, 그 감동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공연 이후 “처음 본 오페라가 너무 좋았다”는 아이들의 인사야말로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뒤에서 조용히 돕던 후원자에서 단장으로
대전 오페라단은 1988년 창단 이후 37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긴 세월 동안 한 교수의 헌신으로 명맥을 지켜왔지만, 세대 교체의 시기를 맞으며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다. 지은주 단장은 오랫동안 무대 뒤에서 조용히 일을 돕던 후원자였다. 그러나 단체가 전환점을 맞이하자 스스로 단장을 맡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전면에 나섰다. 그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무대라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과 세계를 잇는 열린 무대
대전 오페라단은 지역 예술인과 함께 성장하는 무대를 지향한다. 출연진과 스태프 다수가 대전 출신 예술가로 꾸려지지만, 이는 특정 배경에 얽매인 구조가 아니라 지역 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순환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동시에 국내외 신인들에게도 문을 열어 새로운 인재가 이곳에서 경험을 쌓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다. 지 단장은 “우리가 ‘첫 무대’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역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오페라단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포부
지 단장은“앞으로도 지역 기반의 예술가와 신예 성악가를 발굴해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창작오페라 <이상의 날개>를 대전 무대에 다시 올리고, 이를 발판 삼아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는 오페라단으로 성장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