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만 치솟던 초목들의 생장점(生長點)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멈춰 선다. 뒷골목 옹벽 틈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돌돌 대고, 오솔길 풀 섶에서 이름 모를 벌레들의 교향곡 하모니가 오곡백과(五穀白果) 가득하게 남겨놓고 떠나는 무성하던 여름빛을 환송한다. 미물(微物)들의 애절한 음률에서 세월이 가는 소리를 깨닫게 된다.
풀잎 끝에 이슬방울 영롱하게 매달리는 9월의 초저녁 밤하늘에는 하얀 은하수 길게 흐르고, 실눈썹 같은 상현(上弦)달이 살포시 떠 청풍명월(淸風明月), 중추가절(仲秋佳節)이 멀지 않았음을 알린다. 이때쯤이면 염천 더위를 먹고 자라던 오곡백과 여무는 소리가 온 산야에 가득해진다. 역시 섭리의 신비다.
윤기 흐르던 초록빛 여름도 신열을 앓고 난 여인의 얼굴이듯 푸석해진다. 세월과 계절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계절은 윤회도 세월은 직진(直進)한다. 오고 가는 계절은 눈으로 볼 수 있어도, 세월의 존재는 촌치도 알 수가 없다. 봄에는 땅을 파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싹을 틔워 가꾸고 키우며, 또 가을에는 결실하고 수확한다.
혹한삼동(酷寒三冬)에는 자연도, 사람도 휴면기(休眠期)가 된다. 사계(四季)의 섭리다. 여름에 땀 흘려 노력한 만큼 결실로 확인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인간에게 수확이란 삶의 희망이고, 노력의 대가이며, 추구하는 진실이다. 누구나 희망을 향한 노력과 목표대로 수확하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땀을 쏟는다.
누구나 삶의 의미는 희망이고 만족한 결과다.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계절이 가을이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을 말한다. 인생 40이면 불혹(不惑)이고,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미망(迷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다. 계절에 비유하면 40~50대는 오곡백과 결실하는 가을이다.
우리도 노력의 대가를 산술하고 수확을 준비할 때다. 결실이나 수확은 욕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권력도, 명예도, 재물도 흘린 땀의 노력만큼 결실의 가치로 드러난다. 섭리는 거짓이 없다. 똑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똑같이 공부를 시작했어도 누구는 일등 하고 누구는 꼴찌 한다. 진실과 위선의 차이다. 노력은 진실이고, 나태는 위선이다.
9월은 내가 쏟은 노력이 여무는 달이다. 진실을 가꾸었는지, 위선을 가꾸었는지, 반성하고 깨닫는 달이다. 때를 찾아 피고 지는 산야의 초목들을 유심히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사철을 부대끼고 사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세월과 계절의 섭리는 무상(無常)하다. 촌치의 여유가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도 윤회하는 계절 속에 묻혀 있다.
9월이 가면 10월이다. 살아온 인생이듯 살아갈 날도 산술 해본다. 머지않아 단풍잎이 낙엽 되어 휘날릴 것이다. 우리가 매일 거울 속에서 보는 얼굴은 지나간 세월 보기다. 거울 앞에 서면 얼굴에서 허무를 깨닫는다. 진실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
10월은 노력이 여무는 진실의 달이다. 푸르던 여름과 작별하는 계절이다. 내 삶을 돌아보고 사유(思惟)하는 계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