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폭염과 열대야가 길어지고, 겨울엔 가뭄과 산불이 일상화되었다.
충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석탄화력발전소 밀집 지역으로서 온실가스 배출의 중심에 서 있고, 동시에 그 피해의 최전선에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사업 단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예산은 과거 방식으로 짜이고, 감축 효과는 계량되지 않는다.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기후예산제 도입이 필요하다.
기후예산제란 한마디로 예산 과정 전반에 기후영향을 반영하는 제도다.
각 사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혹은 오히려 배출을 늘리는지 평가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심의·집행 단계에서 반영한다.
모든 부서가 기후목표 달성의 책무를 나누는 제도적 장치다. 즉, 예산의 흐름을 바꿔 행정의 DNA에 탄소중립을 심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스웨덴, 뉴질랜드 등은 국가예산에 기후예산서를 첨부하고, OECD는 이를 ‘기후재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획재정부가 2023년부터 중앙정부 차원의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지방정부로의 확산은 아직 미비하다.
그러나 탄소배출의 60% 이상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기후예산제의 핵심 무대는 지방이어야 한다.
충남도는 이미 탄소중립 2045를 선언했지만, 목표 달성의 수단이 여전히 추상적이다.
기후예산제를 도입하면 부서별로 사업의 감축 효과를 수치화해 관리할 수 있고, 의회 또한 예산 심사 과정에서 ‘감축 실적이 있는 예산’과 ‘없는 예산’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행정의 책임성과 예산의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길이다.
기후예산제는 단순한 회계 기법이 아니다. 예산을 통해 행정의 가치관을 바꾸는 혁신 정책이다.
예산이 곧 정책이고, 정책이 곧 철학이라면, 기후예산제는 ‘지속가능성’을 행정의 철학으로 새기는 일이다.
아이들의 통학버스, 농민의 비닐하우스, 노후 공공건물의 단열 개선 등 모든 생활 예산이 곧 기후정책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확인되는 책임이다.
기후예산제가 도입된다면 도민의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것이 기후위기 대응에 실제로 기여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다. 도민과 의회가 함께 감시하고 평가하는 ‘참여형 탄소중립 행정’의 기반이 될 것이다.
충청남도의회는 이미 ‘충청남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하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교육청 역시 기후예산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모든 행정이 기후목표 달성의 주체로 서야 한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지금 우리가 편성하는 한 줄의 예산 속에 있다. 그 예산이 곧 도민의 내일과, 미래 세대의 삶의 온도를 바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