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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름다운 장례식…샹송의 전설 ‘조니 알리데이’

김영모 문학박사·충남대인문역량강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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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1 17: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프랑스 샹송의 전설 조니 알리데이가 지난 12월 5일 프랑스 마른 라 코케트에서 7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57년의 가수생활 동안 79개의 앨범을 발표하고 1억1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한 말 그대로 프랑스 샹송의 전설이었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리데이는 ‘애칭’으로 본명은 쟝-필립 스메트이다. 1943년 벨기에 태생의 아버지 레옹 스메트와 프랑스인 어머니 위게트 외제니 피에르 클레르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강한 영향을 받은 알리데이는 프랑스 로큰롤의 대명사로 1960년 ‘아가씨를 내버려 둬’라는 곡으로 데뷔하여 물랭 루즈, 올랭피아의 전속가수로 60~70년대를 풍미했다.
 
알리데이는 ‘파리지엔느’(1962)를 시작으로 ‘복수’(2009)에 이르기까지 16편의 영화에 출현한 배우이기도 했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였던 알리데이는 프랑스의 사회적 이슈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2016년 파리테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앞장서서 사회정의를 외치며 노래를 불러 상처받은 프랑스 국민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프랑스 대중음악의 전설이자 영화배우였던 알리데이가 타계하자 프랑스는 큰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 국영방송(A2)은 뉴스를 중단한 채 알리데이 특별 생방송을 편성하고 그의 죽음을 프랑스 국민과 함께 애도했다.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의 주요 인사들이 잇달아 애도의 뜻을 표하고, 프랑스 국민들은 알리데이의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로 몰려나와 그의 프랑스 국장(國葬)을 외쳐댔다.
 
하지만 국장은 말 그대로 조국 프랑스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장례이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팬과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의 장례를 국장 대신 대중장으로 결정하는 결단을 내렸다. 알리데이의 인기와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12월 9일 토요일에 알리데이의 장례식이 프랑스 대중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해는 개선문을 거쳐 2㎞의 샹젤리제대로와 콩코르드광장을 거쳐 마들렌 성당에 도착해 장례미사로 이어졌고 프랑스 국영 TV는 이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에 이르는 샹젤리제대로가 이처럼 많은 인파로 뒤덮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1885년 국장으로 치러진 프랑스의 대문호 위고(Hugo)의 장례식에 200만 명의 파리시민이 운집했고, 1963년 여가수 피아프(Piaff)의 장례식에 50만 명의 파리시민이 모였을 뿐이다.
 
그 만큼 이날 샹젤리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추도물결은 알리데이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프랑스 전역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등 전 유럽에서 그의 팬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개선문을 출발한 알리데이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팬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그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였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의 운구차는 그 내부가 보이지 않는 검정색이 통례이다. 이날 알리데이의 운구차는 왜건형 일반자동차로 밖에서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알리데이의 관이 흰색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팬들에 대한 배려였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운집한 수백만 명의 추모객뿐만 아니라 TV로 생중계되는 그의 장례식을 바라보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알리데이의 유해가 그의 대형 사진이 성당 정면 1/3을 뒤덮은 마들렌 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그의 운구가 성당 앞에 안치되자 어디선가 마크롱 대통령이 조용히 등장해 광장을 가득 메운 추도객 앞에 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알리데이는 프랑스의 한 부분이자 운명이었다”고 간략하게 추도한 후 미망인을 비롯하여 자녀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진심으로 이들을 위로했다. 국가원수로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고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인사였다.
 
이어 성당신부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진행되었다. 망자를 추도하는 이 날의 장례미사는 알리데이를 위한 헌정 공연이었다. 4명의 기타리스트는 집전신부가 알리데이를 위한 추도사를 끝날 때마다 그의 음악을 계속하여 연주했고, 추도객들은 이 음악에 맞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박수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프랑스 샹송의 전설이자 국민가수 알리데이는 죽어서조차 이렇게 또다시 그의 팬들에게 마지막 공연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알리데이의 장례식은 정부, 가족, 팬과 국민들이 삼위일체가 된 추도공연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부(대통령)는 대중가수 알리데이의 대중장을 신속하게 결정함으로써 팬과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가족들 또한 장례식을 추도공연으로 승화시킴으로서 팬과 국민들이 그와 마지막 교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수백만 명의 팬과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않고 추도공연 내내 질서정연하면서도 성숙한 시민정신을 보여줬다.
 
알리데이의 대중장은 빛나고도 아름다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영모 문학박사·충남대인문역량강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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