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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충청도로 들여다 본 한반도의 역할과 미래

이노신 호서대학교 인문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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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8 16: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노신 호서대학교 인문융합대학 교수
충청도와 한반도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가 인력과 물자가 거쳐 가는 길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천안 삼거리가, 현재는 대전역 또는 회덕분기점이 영호남으로 가기 위한 길목 노릇을 한다. KTX의 경우 현재 오송역이 그 분기점이다. 충청남북의 여러 지역들이 한반도의 중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처럼 삼남의 길목 역할을 해왔다. 
 
한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서로 충돌하는 접점이자 길목이 되었다. 
 
고려 충렬왕 원년(1274년),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 칸이 일본정벌을 위해 여원연합군을 출병시키며 한반도를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 무렵 제주도에는 몽골 말을 들여와 군사용으로 기르기 시작하였는데 현재 천연기념물 347호로 지정된 제주마의 기원이다. 
 
조선 선조 24년(159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에게 보낸 편지 속에 적혀있던 정명가도(征明假道)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일본이 조선 땅을 거쳐 명을 정벌하겠으니 조선은 왜군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트라는 요구이다. 현재의 남북분단 또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해양세력과 중국과 구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대륙세력 사이에 발생한 갈등의 결과물이다.
 
둘째가 충청도와 한반도는 모두 전략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큰 전쟁이 발발해 왔다. 그것도 외세가 개입된 전쟁이다. 임진왜란의 3대첩 가운데 한산대첩은 충남 아산 출신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진주대첩은 천안 출신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께서 백성들과 함께 만들어 내셨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의 3대첩으로 평양성 전투, 홍경원 전투, 행주대첩을 꼽는다. 그중 홍경원이 바로 현재의 천안(직산)이다. 1597년 9월 명나라 군대는 서울을 향해 북상하던 왜군 선봉대와 천안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말미암아 왜군은 더 이상의 진군을 완전히 포기하였다. 이후 세력이 위축된 채 경상도를 주요 거점지로 삼아 항전하다 얼마 안 가서 임진왜란이 끝을 맺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청일전쟁은 임진왜란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1894년 7월 청일전쟁이 최초 발발한 곳은 아산만(풍도 앞바다)이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의 최종 승리는 천안(성환)에서 일본군이 청국의 주력부대를 초반에 대패시킴으로써 일본 쪽으로 사실상 기울어 버렸다. 
 
공주 우금치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과 이에 협력하는 조선관군에 대항하여 같은 해 11월 동학농민군들이 싸웠던 곳이다. 삼남에서 이곳으로 집결한 약 1만5000명의 동학농민군들은 월등한 화력으로 무장한 400명의 일본군에게 모두 전사하고 오직 5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초기에는 삼남의 길목인 천안삼거리 전투에서 미군이 북한군에게 한국전쟁 최초의 패배를 당하였다. 아직 병력과 무기가 매우 부족했던 1개 보병연대 규모(2000명)의 미군은 천안에서 T-34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3개 정예사단(3사단, 4사단, 105기갑사단 등 총 1만5000 병력)과의 교전에서 크게 패하였다. 이로 인하여 순식간에 대전이 함락되고, 한미연합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660년 당나라 13만 대군이 산둥반도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가로질러 충남 장항에 입항한 뒤 백제멸망을 위한 본격적인 전쟁을 벌였다. 백제멸망 이후에는 백제 부흥군 지원을 위해 663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3만 명의 왜군 원병들이 한반도로 출정하였다. 이들은 백촌강이라 불렀던 충남의 금강하구에 도착하여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충청도의 역사이자 동시에 한반도의 역사적 운명을 결정지었던 대사건들이었다. 충청도가 한반도의 중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어쩌면 한반도는 과거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현재에는 글로벌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사이에서 충청도와 같이 길목 역할을 해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양대 세력이 강성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 속에서 충청인들은 그리고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와 세계무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방향성을 갖고 화합하고 실행해 나가며 앞으로는 더욱 강력한 우리 역사와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노신 호서대학교 인문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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