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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이혜숙 음성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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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01 18: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음성수필문학회장
이혜숙 음성수필문학회장

언제부터인가. 잠을 잃었다. 눈이 아프고 잠이 와서 누우면 달아나는 잠 때문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피로가 밀려와 누웠는데도 잘 수가 없다.

젊을 때는 게을러서 하지 않던 외국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중국 체험학습을 다녀오고 나서다. 약간의 단어로 아주 조금밖에 대화를 할 수 없던 것이 자극되었나보다.

열심히는 하지 않았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공부하러 다녔다. 가방은 방에 두고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갈 때만 하던 중국어학습을 하게 되었다. 유투브에는 동영상이 참 많다. 골라서 보기만 하면 되는 그런 곳이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중국어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어렵기만 하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우면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나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며칠 후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망할 필요가 없다. 계속하면 되니까.

그렇게 중국어를 공부하다보니 욕심이 생긴다. 영어에 도전하기로 했다. 중국어는 외국어를 자기네 말로 바꾸어 말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외국어를 바꾸어 말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받아드린다. 생소한 중국어보다 영어를 공부하는 게 훨씬 쉽다.

공부에 빠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처음 알았다. 젊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중도 포기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몰랐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예전에 방송에서 일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가 백세가 다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외국어를 공부한단다. 여러 나라 말을 하는데 다시 독일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독일에 있는 제자들하고 대화를 하려면 배워야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저분은 나와 다르니까 연세가 많아도 공부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와는 완전 먼 나라 이야기라고.

그런 내가 70세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성공하려면 포기할 것 같아서 기간을 길게 잡았다. 그때가 되면 자유로운 대화를 하고 혼자서도 자유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곳에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구 저편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기간을 길게 잡으니 일본어도 하고 싶었다. 한나라 언어를 공부하다가 싫증나면 다른 나라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새로운 기분이 들어 지루하지 않았다. 예전에 히라가나 가다가나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안 외워졌는지. 다시 보니 이제 그 글자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젊을 때도 안 들어오던 글자들이 내 머릿속으로 와서 자리 잡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행복하다.

6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이다. 원래부터 생활 습관이 야행성이라 낮에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걸려오는 전화. 여러 요소들이 정신 집중을 어렵게 한다. 그런 방해요소들은 공부의 흐름을 끊는다. 그러다보니 야밤은 나에게 아주 멋진 여건을 만들어 준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한 과목을 빼먹고 누웠다. 잠이 쏟아질 것 같더니 자리에 눕자마자 눈이 크게 떠지면서 잠이 멀리 달아났다. 결국 다시 일어나 하지 못한 과목을 하고 나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도 영향을 받았는지 자기도 해야 한다면서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안방에서는 내가 사랑방에선 남편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외국어들이 천정을 날아다닌다. 동영상을 만들어 강의하는 분들에게 늘 감사한다. 돈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게 해준 분들이 있어 나를 재탄생하게 하는 것 같다. 어디 있는 강사인지 모르지만 밥이라도 사고 싶고 차라도 대접하고 싶다.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인터넷의 발달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우고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세상에 산다는 것도 행복하기 그지없다.

지식을 잣대로 생각해서인지 학력위조 소식이 자주 들린다. 그만큼 학력을 중요시하는 세상이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나는 지혜로운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식보다 지혜가 많아야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 같다.

오늘도 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일면식도 없는 강사들을 바라보면 단어 하나하나, 문장하나하나를 배우고 익힌다.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제 마음을 바꿨다. 학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혜로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0세가 되어 내가 멋지게 외국 언어구사를 할 때 배낭하나 매고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나를 그리면서 오늘도 잠을 잊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 순간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나를 멋진 세상으로 데려가는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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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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