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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을 단상(斷想)

김일호 白樹文學會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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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5.09.21 13: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일호 白樹文學會長
며칠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흡족하게 내렸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에 녹아났던 산천이 생기를 되찾아 기지개를 펴고 있다. 촉촉이 젖은 대지를 딛고 선 온갖 생명은 선선해진 바람을 호흡하며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으로 다시 찾아올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꽃으로부터 잉태하여 속살을 채운 과실이나 곡물들은 추수의 절기를 앞두고 있다. 못다 핀 꽃들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기라도 하듯 곳곳에 해맑게 피어 있다. 한층 푸르러 춤추던 잎들은 한잎 두잎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가을은 그런 모습으로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민족 고유명절인 중추절도 멀지 않다. 사철 다른 모습의 자연 못지않게 사람들의 마음도 조급해지고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녹록하지 않던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꿈꾸어 왔던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난날을 발판 삼아 젖먹던 힘까지 다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상일에 속고 사람의 말에 한번 두 번 속았을지라도 결코 불신만 키우지 않으며, 믿거라 하니 크고 작은 일상을 펼치고 거두고 반복하며 어둠을 멀리하고 늘 새 아침을 맞이하며 살고 있다.

솔직히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지만,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상부층의 정쟁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불의를 정의로 포장하고, 내가 하면 옳고 네가 하면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작태를 목도 하게 된다. TV의 전원을 내리고 사람 만나기를 멀리해도 그런 말들은 잎새를 스치는 바람처럼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민생의 안위나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참새떼 노는 대숲에 까마귀 떼 날아들어 훼방을 놓는 것 같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부 관료나 정치인들의 구태는 함께 가야 할 길을 멀게 하고 내일로 가야 하는 길을 더디게 하고 있다. 함께 힘을 모아도 더욱 치열해진 국제사회의 경쟁에 모자랄 터인데 내환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진영 간, 지역 간, 계층 간 첨예하게 편을 가르고 있을 뿐 아니라, 계급장 달아주듯 평등을 무시한 삶의 서열을 정해가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세계 경제, 군사 10대 강국이며, 취학율 세계 1위 대한민국의 민낯을 뒷골목에서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사계절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는 등 우리나라 기후조건도 점점 아열대화하고 있다. 가을이 왔다 싶으면 어느새 겨울이 온다. 그에 따른 인간 사회도 빠른 속도로 변화무쌍해지고 있다. 그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적응하고자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립과 관련된 나라 공동체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물밀 듯 다가와 인류공영을 위협하는 다양한 과제를 풀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공동체의 질서회복이 우선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건조해진 대지의 생명수가 되고 땀 흘려 가꾼 열매들의 속살을 채우는 젖이 된다. 자연의 순리가 그렇다. 싸우고, 놀면서도 먹자판이 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좀 더 높이고 실천하고자 하는 정신무장만이 꿈의 곳간을 채우게 해 줄 것이다. 이 땅의 내일과 미래사회가 약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선 안된다. 지금이 늦지 않은 기회이며 오늘이 그 날이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을 기다리며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설렘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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