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3 계엄 이후 1년 가까이 주장하면서 첨예하게 갈린 진영간 서로 물고 뜯으며 이어온 정국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그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은 폭발 직전 시한폭탄과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물가 폭등에 고환율, 널뛰는 주거 시세, 요동치는 주식시장 등 나라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먹고 사는 문제에 정답을 찾기는커녕 앞날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어느 쪽의 오판이든 마냥 그 책임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이미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마저 넘은 지 오래다.
위정자들의 알량한 눈속임을 선량한 국민이 모를 리 없다. 허덕이는 삶에 지쳐 차라리 입 닫고 사는 게 낫겠다는 자포자기에서 모른 척 할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옳지 않은 건지,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공정과 공의와 상식과 양심을 다수결로 정할 수 없지만, 소리 없이 흘러가는 밑바닥 민심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았거나 많이 가졌다고 해서, 아니면 지식이 풍부하거나 말을 잘한다고 하는 그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기본은 서로 다른 것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조금씩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상호 보완을 통해 국가나 사회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사람 목숨도 유한하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꿈을 꾸어도 길어야 백 년 인생이다. 그 백 년을 나누어 생각해보면 배우고 일하며,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그다음 좀 살만해지면 늙고 병들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그 길은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신이 정해준 인생 항로이다. 그러함에도 죽기 살기로 자신만의 권력을 탐하거나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하여 도덕이니 윤리니 따져 볼 것도 없이 불법과 반칙을 일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독차지할 듯이 날뛰고 있는 오늘을 부인할 수 없다.
겨울로 가는 길, 그 길이 끝이 아니다. 절망적일 것 없다. 끝내 살아남아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봄날은 약속대로 찾아온다. 꿈이 사라지고 그 무엇도 기다려 볼 여력조차 없다면 산목숨이 아니다. 날마다 보고 느끼고 듣는 이야기들이 불길하지만, 겨울 길 뜨락에 살포시 내려앉아 빛나는 햇살 만날 수 있듯이, 좋은 날 좋은 소식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만이 힘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내가 아닌 우리라는 넓은 가슴에서 솟아 나오는 따듯한 호흡이 추위를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누구를 비판 비난하기에 앞서 맑은 거울 앞에 선 듯 나부터 옳고 바르게 살고자 하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의 겨울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