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쭉이 벌써 끝물에 접어든다. 싱그러운 계절 골짜기 능선을 화려하게 물들인 꽃여울이 봄을 마무리하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화전으로 먹은 진달래와는 달리 독 때문에 먹지 못하는 건 널리 회자된 사실이다. 그 외 철쭉의 한자 이름인 척촉 ?? 즉 꽃이 너무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게 된다는 것도 누차 들어왔으나 진달래 다음에 피어서 연달래라고 부른다는 건 생소하다.
하기야 진달래도 분홍색이면 연달래라고 했다. 알맞게 붉으면 진달래, 자주색이면 난초 빛 같다 하여 난달래라 했다. 가뜩이나 비슷한 터에 이름까지 겹친 셈이되 진달래를 연달래라고 할 때의 연軟은 빛깔이 연하다는 뜻이고 철쭉의 연連달래는 뒤미처 핀다는 뜻으로 엄밀히 다른데도 자주 헷갈린다.
진달래와 철쭉은 그렇게 서로 엇비슷하다. 생김은 물론 빛깔도 흡사하지만 시기적으로 진달래가 먼저 피고 철쭉은 나중이다. 꽃잎도 진달래는 꽃이 떨어진 다음에 잎이 돋아나고 철쭉은 꽃이 피면서 돋는다. 그 외에 진달래의 꽃잎은 얇고 투명해서 소녀 같은 이미지였으나 철쭉은 두껍고 빛깔이 진한 게 육감적이다. 꽃잎 역시 만져 보면 끈적끈적한 게 투명한 진달래와는 딴판이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진달래는 참꽃이고 철쭉은 독성이 있는 금기의 꽃으로 알려졌다. 그만치 옛날부터 논란이 분분했던 것일까.
신라 시대의 헌화가에 등장하는 꽃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애매하다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만 진달래가 압권인 것은 진달래는 성분이 순해서인지 핀으로 꽂거나 머리 장식을 하고 꽃병에 꽂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독이 없다는 의미고 따라서 우리나라 여자들이 좋아한 건 진달래였기에 수로부인 역시 철쭉이 아닌 진달래를 원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또 하나 진달래는 두견새가 날아드는데 철쭉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새라면 키 큰 나무에 둥지를 틀게 마련이되 단지 진달래가 두견화였기 때문에 날아드는 새 역시 두견새였다는 거다. 두견새가 울 즈음 피어서 붙은 이름이지만 비슷한 꽃을 구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진달래와 철쭉같이 비슷한 거라면 모란과 작약이다. 모란은 이미 져 버렸고 작약도 끝물이지만, 도란도란 비스무리하게 피는 이들은 똑같이 약재로 쓰이는 건 물론 자라는 모양도 흡사해서 헷갈리기 쉬운 꽃들이다. 작약은 단지 풀이라서 해마다 새순이 올라오는 대신 모란은 줄기에서 싹이 트는 엄연한 나무다. 모란은 또 청초한 게 진달래와 비슷하고 함박꽃인 작약은 푸짐하게 피어서인지 육감적인 철쭉과 어지간하다. 피는 시기도 모란이 먼저고 작약이 나중인 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는 진달래와 철쭉 그대로다. 가끔 모란이 필 때 약간 쌀쌀하고 작약이 필 때 따스해지면 시기까지 맞물려 더더욱 혼란스럽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독성의 유무라지만 그 또한 이설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선덕여왕 즉 덕만공주가 모란꽃 병풍을 보고 나비와 향기 운운하는 바람에 향기가 없다고 해 왔으나 모란의 꽃말은 부귀영화고 나비는 80을 상징했기에 80까지 누리라는 게 억지스럽고 따라서 옛날 중국의 모란 그림에는 나비가 들어갈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신라 때 들어 온 병풍이 그런 그림이었는데 왜 심어본즉 나비가 진짜 오지 않았을까. 당시 중국에서는 꽃 중의 왕인 모란의 품종개량이 한창이었는데 빛깔이 화려한 것만 교배하다 보니 향기 없는 꽃이 다량으로 퍼졌고 어쩌다 그런 씨앗이 전해졌다고 한다.
배경을 알고 본즉 납득이 가기는 했으나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다. 약초라서 소량의 독성은 함유되었을지언정 향기는 있기에 나비가 날아든다. 그런데도 모란 하면 불쑥 향기 없는 꽃이 떠오르는 괴리가 참 당혹스럽지만 잡초 속의 꽃이 때로 고운 것처럼 혼란 속에서 파생된 감동 또한 인상적일 수 있다. 정석인 줄 믿어 온 것 중에 오류가 많은 건 흔한 일이되 세상 불변의 법칙이 곧 모든 것은 바뀐다는 그 법칙이라면 새삼스러울 게 없다. 철저하게 믿었던 이념과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으나 그런 속에서 발견되는 이념도 소중하다. 실망하기보다는 바뀌는 세상의 단면을 용납할 동안 깨닫는 섭리가 의외로 많다면 견딜만했다.
비슷하게 피는 꽃이 철철이 많은 것도 그런 이치를 수반한다.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시기가 불청객 꽃샘 때문에 봄인지 겨울인지 모를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모란과 작약이 필 때는 또 봄인지 여름인지 애매한 걸 보면 느낌이 묘하다. 꽃샘 무렵에는 날씨 때문에 그나마도 명확히 구분되었지만 모란과 작약처럼 헷갈릴 만치 진행되는 혼란도 많다. 그러나 항해하는 배가 표류하면서 정확한 항로를 찾는 것처럼 그런 혼란 때문에 작약이 지고 비로소 여름이 된다는 사실이 더 극명해지지 않을까. 진달래가 필 즈음은 유독 쌀쌀해서 겨울을 대비할 때처럼 긴장해야 된다는 사실도 수십 년의 봄이 지난 끝에 알았으니까.
앞서 진달래도 난초같이 진할 때는 난달래라고 한 것처럼 진달래도 철쭉 같은 기질이 다분하고 진달래같이 연한 철쭉도 있다. 빛깔이 짙은 모란은 작약과 비슷하고 작약도 흐린 것은 모란과 어지간하다. 천성적으로 비슷한 이들의 3월 말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꽃 그래프는 독성의 유무뿐이 아닌 빛깔의 농담까지 정확하게 기입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 OX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이편도 저 편도 아닌 애매한 속에서 드러나는 섭리와 경이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걸까. 결국 끝까지 의혹의 대상일 수밖에 없지만 혼란이 오래일수록 확실히 깨우치면서 더 이상의 혼란은 없게 되는 섭리를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