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금요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흐린 아침. 잔디밭과 붉은 벽돌길이 맞닿은 공원 끝자락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매장 앞에 놓인 테이블링 기계(무인 등록기)에서 순서를 등록한 이들은 삼삼오오 벤치에 앉거나 잔디밭 가장자리에 서서 조용히 매장을 바라봤다. 말은 없었지만, 표정에는 잔잔한 기대가 어려 있었다.

그날, 기자 본인 역시 그들 사이에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대기번호는 39번. 줄은 없었지만, 기다림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찾아 앉거나, 잔디 위에 서서 말없이 매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풍경 속, 블라인드 너머로 내부가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숨죽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시선을 모으는 곳, 바로 파셀 베이커리이다. 대전 유성구 죽동에 자리한 식사빵과 샌드위치 전문점. 주 4일,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여는 이곳은 짧은 영업시간 안에도 줄 서서라도 맛보고 싶어지는 빵집이다.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 발효종 르방을 사용해 소화가 편안한 장시간 발효빵을 만들고, 단순히 건강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맛의 밀도’까지 지켜내며 마니아층을 형성해온 곳이다. 그래서일까. 파셀이라는 이름 앞에서 사람들은 묘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빵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하나의 신뢰가 된 공간. 그 순간의 설렘을 빵으로 다시 꺼내본다.

◎ 파셀, 이렇게 맛봤어요!
가장 먼저 맛본 건 ‘허니 리코타 포카치아’. 특유의 달콤한 크림치즈 향이 과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풍미가 또렷하게 전해졌다. 바게트는 바삭하면서도 결이 살아 있었고, 위에 솔솔 뿌려진 소금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매끄럽게 잡아줬다. 특히 루꼴라의 향긋함과 햄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가볍지만 깊이 있는 첫 인상을 남겼다.
이어 맛본 ‘파셀 시그니처’는 이름 그대로 매장을 대표하는 메뉴다. 바게트 특유의 쫀쫀한 식감에 바질, 토마토, 치즈가 어우러져 고소함과 산미의 균형을 이뤘고, 무엇보다 입천장을 긁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이 인상 깊었다. 담백한 듯 시작해 마지막엔 입안에 풍미가 오래 남는 빵이었다.
‘루꼴라 잠봉뵈르’는 제주산 흑돼지 햄과 하바티 치즈, 루꼴라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샌드위치였다. 햄이나 치즈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머스타드의 은은한 향이 모든 재료를 부드럽게 감쌌다. 마무리로 번지는 담백한 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빵순이 기자의 최애 Pick은 단연 스파이시 포카치아. 겉보기엔 평범한 샌드위치처럼 보였지만, 한 입 베어 문 순간 입 안 가득 터지는 스리라차 마요 소스의 매콤함과 아보카도의 고소함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슬라이스된 닭가슴살, 루꼴라, 하바티 치즈의 조화가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았다.

◎ 파셀, 이런 점이 좋았어요!
파셀은 '빵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빵집이었다. 테이블은 없고, 내부에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팀은 두 팀뿐. 그 덕분에 소란스러움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은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할 수 있고, 손님도 자연스레 빵에 더 집중하게 된다. 직원들은 모두 위생 모자, 마스크, 장갑, 앞치마를 착용해 단정하고 위생적인 복장을 갖추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정돈된 분위기와 세심한 운영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운영 방식과 분위기에는 파셀만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건강한 재료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발효하고 구운 식사빵과 샌드위치 하나하나에 매장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과도한 장식이나 설명이 없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메뉴 이름만으로 재료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포장도 간결했다. 모든 것이 '빵이 주인공인 공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빵의 크기 또한 특별했다. 대부분의 메뉴가 일반 빵집보다 훨씬 크고 든든하게 구성돼 있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모든 빵이 정해진 시간마다 소량씩 나오기 때문에, 각 빵에 대한 집중도도 높다. 지금 눈앞에 있는 빵은 다시 오픈했을 땐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 빵순이 기자의 한마디
파셀은 맛있는 빵을 파는 곳인 동시에,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빵집이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 긴 대기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부터, 기다림 끝에 만나는 담백하고 진심 가득한 빵까지. 모든 순간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무엇보다 파셀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빵이 나오는 시간과 방식 자체가 독특하다는 점이다. 같은 시간에 모든 메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식사빵과 샌드위치를 나눠 따로 굽고 따로 내는 구조. 메뉴별로 나오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빵을 위해 그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손에 든 이 빵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이 생긴다. 한 빵, 한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되는 구조.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구성이기에, 같은 빵을 다시 만난다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파셀은 그렇게 빵 한 조각에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다음 주말이 오면, 이 골목 끝자락을 또 떠올리게 될 것 같다.

ㆍ파셀 가이드ㆍ
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 죽동로298번길 11 1층 101호
영업시간: 수요일 오전 11:00 오후 4:30, 목·금·토요일 오전 8:00-오후 4:30 (브레이크타임 오전 9:30~11:00)
대표 메뉴: 허니 리코타 포카치아, 파셀 시그니처, 루꼴라 잠봉뵈르, 스파이시 포카치아
주차 정보: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추천 시간: 식사빵 - 오전 8시 10분8시 30분 / 샌드위치 - 오전 11시 전후
